[일본 백명산] 자연이 빚은 북 알프스의 걸작, 고류다케(五竜岳, 2,814M)

**2024년 9월 23일~25일간의 우시로다테야마 연봉(後立山連峰) 남부 종주 영상의 일부입니다.

시나노 오마치(信濃大町)에서 하쿠바 무라(白馬村), 고타니 무라(小谷村)로 이어지는 마을은 일본인들에게 뿐만 아니라,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. 거대한 산 허리를 따라 곳곳에 이름 난 스키장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. 산 허리의 주인은 우시로다테야마 연봉(後立山連峰)이다. 관광객이나 스키어 들은 이 마을들을 지켜주는 수호신과도 같은 이 연봉의 중턱, 2천미터 아래에 자리한 능선에서 자연을 즐긴다.
그런데, 3천미터 가까이 되는 정상 들에는 7월이 되어도 여전히 흰 눈이 쌓여 있어, 다들 그저 감탄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뿐, 그 산봉우리의 이름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. 산록의 지명에 하쿠바(白馬)가 들어있어 막연하게 하쿠바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.
이 스키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핫포오네(八方尾根) 스키장이다. 이 스키장을 오르기 위해 마을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왼쪽으로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산이 시야에 들어 온다. 바로 고류다케다.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비교적 가까워서, 겨울에도 장비를 갖추고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은 산이기도 하고, 그 늠름한 산세 때문에 산악 사진가들에게는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는 산이기도 하다.

내가 처음 이 산의 이름, 혹은 그 모습을 기억하게 된 건, 다부치 유키오(田淵行男) 선생의 「고류 잔설 五竜残雪」(1943)이라는 사진을 통해서다. 뭉퉁하지만 당당하게 하늘로 솟은 고류다케의 정상과 눈 덮힌 산의 살갓을 수줍게 빛추는 보름달. 단박에 매료되었다. 사실, ‘솟았다’는 표현이 이 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. 하늘에서 빚어내 하계로 하사한 듯한, 말하자면 구름 위에서 내려온 거대한 조각품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. 북 알프스에서 비슷한 산으로는 단정한 피라미드 모양의 죠넨다케(常念岳, 2,857M)가 있다.

고류다케로 가는 등산로로는, 지금은 세 가지가 있다. 하나는, 카라마츠다케(唐松岳)에서 남하하는 길, 다른 하나는 가시마야리가타케(鹿島槍ヶ岳)에서 북상하는 길, 말하자면 이 둘은 우시로다테야마 연봉의 종주 코스에 속한다. 나머지 하나는 고류다케 산록에 있는 하쿠바 고류 스키장에서 토미오네(遠見尾根)를 타고 오르는 코스가 있다. 어느 쪽이든 체력도, 산을 타 본 경험도, 충분한 준비도 필요하다.

2024년 9월 하순, 나는 핫포오네를 타고 카라마츠다케 정산상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, 다음 날 새벽 카라마츠다케 꼭대기에서 해돋이를 보고 바로 짐을 챙겨 고류다케로 향했다.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, 그렇게 강하지 않은 따사로운 햇빛… 가을이 줄 수 있는 최상의 날씨였고, 확 트인 시야 덕분에 걷는 내내 다테야마(立山)와 츠루기다케(剱岳)를 원없이 즐길 수 있었다. 우시쿠비 암장이라는 첫 번째 난소를 통과했을 무렵, 고류다케는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산록에 운무로 띠를 두르고 있었다. 그 찬란한 모습을 잊고 싶지 않아서 몇 번이고 사진을 찍고, 눈에 온전히 각인시켜 두려 했다. 었다. 고류다케의 정상을 밟았을 때는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었고, 정상에는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.

이 종주 코스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일본 굴지의 두 거봉을 만끽할 수 있다는 데 있다. 다만,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고 해도 오전 시간에 산을 오르다보면, 빨라도 11시 넘어서 정상에 오르기 때문에 3천미터급 봉우리에는 구름이 올라오기 마련이다.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. 정상에서 다테야마와 츠루기다케, 그리고 가시마야리가타케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. 그러나 이건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. 이른 새벽에 등산을 시작했다면 정상에서 펼쳐지는 풍광은 원없이 즐겼겠지만, 가을 산을 오르면서 얻을 수 있는 따사로운 햇살의 감촉이나 탁 트인 전망 등은 즐길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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